목차
- 1부 – 모모와 로자, 기묘한 시작
- 2부 – 벨빌의 냄새, 가난과 사람들
- 3부 – 다가오는 그림자, 점점 자라나는 불안
- 4부 – 로자가 없는 세상, 깊은 고독
- 5부 – 남은 삶,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
1부 – 모모와 로자, 기묘한 시작
『자기 앞의 생』의 첫 장면은 지독히도 보잘것없는 파리 벨빌의 낡은 아파트에서 열린다. 주인공 모모는 그곳에서 살았다. 정확히는 로자 아줌마가 운영하는 ‘아이 보관소’ 같은 집에서. 로자는 나이 많은 유태인 여자로, 한때 몸을 팔던 매춘부였다. 그녀는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낳은 아이들을 일정 금액을 받고 맡아 키워줬다. 모모도 그중 하나였다.
모모는 자신이 언제부터 거기서 살았는지, 정확히 몇 살인지조차 잘 몰랐다. 다만 로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당연해서 별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로자는 늘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이며 걸었고, 기침이 잦았다. 그래도 꿋꿋이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간혹 바느질을 하거나 옛 연인을 떠올리며 흐느꼈다. 그 모든 장면이 모모에게는 ‘가족’이었다.
로자는 모모에게 자주 “네 엄마도 널 사랑해서 맡긴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모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사람이 자기를 버렸는지 아닌지, 묘하게 감각으로 아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그 거짓말 같은 위로를 붙잡았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덜 외로웠으니까.
낡은 아파트 안에는 모모만 있는 게 아니었다. 로자가 돌보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고, 동네 사람들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매춘부들이 가끔 와서 술에 취해 울고 갔고, 알제리 출신의 노동자들이 담배를 빌리러 오기도 했다. 그곳은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가난했지만 묘하게 따뜻했다.
모모는 로자에게서 세상을 배웠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진실들, 예쁜 말로는 결코 다 담기지 않는 현실의 거칠음을. 가끔 로자는 프랑스어 대신 옛 폴란드어를 중얼거리며 옛날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면 모모는 알 수 없는 언어 속에서 로자가 겪었을 두려움과 외로움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 느낌이 기묘하게 모모의 마음을 조용히 감쌌다.
『자기 앞의 생』의 1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낡은 방, 노쇠한 몸, 묘하게 고집스러운 로자, 그리고 그 곁에 있는 어린 모모. 그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단단히 묶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이유를 모모도, 로자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시작은 애처롭고도 따뜻하다. 세상 그 누구도 보살펴주지 않는 사람들끼리 서투르게 기대어 사는 풍경. 그 풍경이 독자의 마음을 묘하게 먹먹하게 만든다. 아직 아무 비극도 터지지 않았는데도, 읽는 내내 목 안이 시큰해지는 건 어쩌면 이 두 사람이 결국 마주할 운명을 어렴풋이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2부 – 벨빌의 냄새, 가난과 사람들
『자기 앞의 생』에서 벨빌이라는 동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물 같다. 가난하고 소란스러우며, 다양한 민족과 사연들이 뒤엉켜 있는 곳. 모모는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벨빌이 모모를 키웠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거리에는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향신료 냄새가 퍼졌고, 계단에는 쓰레기가 구석마다 쌓였다.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에는 늘 싸구려 음식 냄새와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모모에게는 익숙하고 편안했다.
로자는 그런 동네에서 살아가는 법을 이미 체득한 사람이었다. 불법 체류자, 매춘부, 마약을 파는 소년들까지, 모두 로자에게 경계심을 덜었다. 그녀는 그들을 단순히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각자의 이유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 역시 로자에게 예의를 차렸다.
모모는 어린 나이에 그 복잡한 인간 군상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가진 비밀, 숨기고 싶은 과거, 겉으로 웃다가도 금세 사라지는 미소. 그 모든 것을 어린 눈으로 보면서도 모모는 어른스러운 이해를 가졌다. 어쩌면 너무 일찍 세상의 쓴맛을 알아버린 탓이었다.
어느 날 모모는 로자에게 물었다. “우리도 가난한 거야?” 로자는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껄껄 웃었다. “우리? 우리는 가난이 아니라 그냥 살고 있는 거지.” 그 말은 위로 같기도, 체념 같기도 했다. 모모는 그 말을 마음속 어딘가에 고이 넣어두었다.
이 동네에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보다 오늘을 버티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주되, 지나치게 묶이진 않았다. 필요할 때만 도와주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묘한 거리감이 이 동네를 유지시켰다.
『자기 앞의 생』의 2부는 벨빌이라는 공간을 통해 가난과 연대, 그리고 인간적인 체취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가난은 사람을 찌들게도 하지만, 때론 더 진득한 온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모모는 그 온기를 좋아했다. 모두가 가난했기에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적었고, 누구도 상대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동류였다. 그리고 그 진부한 진실이 모모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소설은 그런 소소한 장면들을 통해 말없이 묻는다. “우리는 왜 서로를 돌보지 않을까?” “가난이 우리를 갈라놓는 걸까, 아니면 더 붙잡아 주는 걸까?” 그 질문은 독자의 마음을 오래도록 머물게 한다.
3부 – 다가오는 그림자, 점점 자라나는 불안
시간은 로자와 모모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모모가 조금씩 자라듯, 로자 역시 조금씩 더 늙어갔다. 숨이 더 가빠졌고, 앉아 있다가도 이유 없이 울먹였다. 밤이 되면 그 작고 마른 등이 유난히 약해 보였다.
모모는 처음엔 그 변화를 잘 몰랐다. 늘 아프던 사람이 조금 더 아픈 거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로자가 모모 몰래 의사에게 보인 불안한 눈빛을 보고 그는 어렴풋이 알았다. 이제 자신이 보호받던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로자의 건강이 나빠질수록 집안 공기는 묘하게 가라앉았다. 같이 사는 아이들도 점점 조용해졌다. 벽에 걸린 작은 예수 그림자조차 한층 어두워 보였다. 모모는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혼자 앉아 “로자가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물음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해 마음에 박혔다.
그때부터 모모는 유난히 로자에게 매달렸다. 시장에 갈 때도 따라나서고, 숨 가쁜 밤에는 로자의 방 앞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혹시 멈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모모에게 로자는 세상이었으니까. 로자가 사라지면 세상도 같이 사라질 거라 믿었다.
로자는 그런 모모를 달래려 애썼다. “난 아직 멀쩡해, 이놈아. 네가 나중에 커서도 내가 필요할까 봐 걱정이지.” 로자가 그런 농담을 할 때면 모모는 억지로라도 웃었다. 하지만 둘 다 알았다. 그 웃음이 얼마나 가볍게 껍질만 남은 것인지를.
『자기 앞의 생』의 3부에서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끝’에 대한 공기가 깔린다. 죽음은 너무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히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어린 모모는 그 불안을 막연히만 느꼈지만, 그래도 그 두려움을 덜어줄 어른은 로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로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모모는 더 이상 철없는 아이가 아니었다. 늘 의젓했지만, 이제는 씁쓸할 정도로 차분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지점은 어린아이가 자기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모모는 로자의 죽음을 대비하려 애쓰면서도 결국 그 준비가 허망하단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3부는 잔인하다. 아이에게 죽음을 가르치는 방식이란 언제나 그렇다. 모모는 매일같이 “아직은 괜찮다”는 거짓을 들으며 그 거짓에 더 깊이 매달렸다. 그게 자신을 지켜주는 유일한 끈 같았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목이 메인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이미 잃기 전부터 그 그림자에 갇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모모와 로자가 보낸 이 불안의 시간들은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가슴 저리다.
4부 – 로자가 없는 세상, 깊은 고독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다. 모모가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 로자는 더 이상 숨쉬지 않았다. 자그마한 몸은 침대 위에서 가볍게 식어갔고, 모모는 그 옆에서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도 많던 질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모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이제 모모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로자를 잃고 난 후, 벨빌의 풍경은 전과 똑같은데도 모두가 낯설었다.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웃고, 고함치며 살았지만, 모모에게 세상은 더 이상 같은 색깔이 아니었다. 그 밝음 속에 모모 혼자만 그림자가 된 것 같았다.
가끔 로자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그 방에는 아직 로자의 냄새가 남아 있었고, 옷장 구석에는 작고 초라한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모모는 그걸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다시 내려놓았다. 그 구두를 신을 발이 더는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사람들은 모모에게 연민 섞인 시선을 보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니?” “누구랑 살래?” 모모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 대답 없는 몸짓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소설은 로자가 죽은 후의 모모를 잔인할 만큼 오래 비춘다. 마치 그 고독을 충분히 느껴보라고 하는 것처럼. 그래서 『자기 앞의 생』은 단순히 눈물 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상실은 눈물보다 더 깊숙이 파고들어, 말도 못 하게 만든다.
모모는 벨빌을 떠나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굳이 떠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살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애처로워 보였다. 죽음이라는 끝이 찾아왔는데도, 삶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의 4부는 로자가 없는 세상을 견디는 모모의 나날을 그린다. 그 견딤은 의연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았다. 그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 그것만으로도 버겁지만 멈추지 못하는 것. 모모는 그렇게 살아냈다.
이 부분을 읽고 있으면 누구나 자기 마음속 깊은 어딘가가 울린다. 우리도 언젠가, 아니 이미 이런 모모 같은 순간을 겪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기대거나 부를 이름이 없어진 자리. 그 자리를 껴안고 숨만 쉬던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는 있었다.
5부 – 남은 삶,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
시간은 다시 모모를 앞으로 끌고 갔다. 로자가 떠난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벨빌은 여전히 가난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술에 취해 웃었다. 그 속에서 모모도 어정쩡하게 웃으며 지냈다. 가끔은 그 웃음이 진짜 같았다.
하지만 모모 안에는 늘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로자가 있었다. 그 빈자리 때문에 모모는 더 이상 완전히 어리지 않았다. 아이와 어른 사이, 애매한 경계에 서서 그는 묘하게 단단해지고 있었다.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은 처연하지만 묘하게 희망적이다. 모모는 아직도 로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시선이 허공에서라도 계속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이유가 되는 듯했다.
소설 속에서 모모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앞으로도 잘 살 거야.” 그 말은 어린애가 하는 자기암시 같으면서도, 어떤 늙은 이가 삶을 되뇌듯 내뱉는 체념 같았다. 어느 쪽이든, 그 말에는 작지만 진짜 같은 희망이 담겨 있었다.
벨빌의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쓰레기 냄새는 여전히 코를 찔렀다. 하지만 모모는 그곳에서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 그 사실을 로자가 가르쳐 주었기에, 모모는 그 가르침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이상할 만큼 조용해진다. 눈물이 흐를 듯 말 듯 멈춰 있고, 마음 한구석에 조그만 온기가 남는다. 그 온기가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선물 같다.
로자는 죽었지만, 모모는 살아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그렇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겠지. 그게 삶이라는 걸, 모모는 우리보다 조금 먼저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다정하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희망 하나라도 끝끝내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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