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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리뷰

『모순』 감성 리뷰 – “모순을 안고도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by new-story1 202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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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목차

 

 

『모순』은 양귀자 작가가 우리 시대의 '평범한 청춘'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사람과 삶, 감정과 관계의 복잡한 결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 없이, 감성 중심으로 구성된 이 리뷰는 인물의 성장과 내면 변화, 관계 속 갈등과 화해를 따라가며 우리가 모두 안고 있는 ‘모순’이라는 단어의 온도를 조용히 들여다봅니다.

 

 

1부 – 나라는 이름의 작은 우주

『모순』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안진진’이라는 한 인물과 마주한다. 그녀는 특별하지 않다. 눈부신 재능이 있거나, 비범한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해서, 그 평범함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다.

 

안진진은 ‘나’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사람이다. 20대의 불확실한 시절, 사랑에 흔들리고, 가족에 지치고, 세상과 나 사이의 간격에 자주 길을 잃는다. 그 모든 흔들림은 우리가 지나왔거나 지금 겪고 있는 것들이기에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성장담이 아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는 없다. 오히려 진진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모순 속에 머문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자기 인식’이 있다. 그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태도이자,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단단해지는 과정이다.

 

진진의 내면은 복잡하다. 그녀는 누군가를 원망하면서도 애틋해하고,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쉽게 벽을 친다. 삶을 낙관하려 애쓰면서도 깊은 회의에 빠지곤 한다. 그 모든 감정들이 그녀를 구성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 복잡함을 ‘나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인다.

『모순』은 안진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청춘이란 본디 불완전하고 모순된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 모순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 그게 진짜 성장이자, 삶의 방식임을 보여준다.

 

읽는 내내 자주 멈추게 된다. 진진의 문장이 날카롭게 마음을 찌르고, 때로는 한없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는 나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내 안의 모순을 얼마나 이해하려 애썼나.” 이 질문들이 독자의 마음 한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모순』은 단지 서사가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만드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불완전함도, 흔들림도, 상처도 ‘나’라는 이름의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별들이라는 것을.

 

 

2부 – 사랑은 모순이고, 가족은 역설이다

『모순』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수사적 장치가 아니다. 이 소설은 진짜 ‘모순’들을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감정, 가족이라는 관계는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감정의 변주는 결국 ‘모순’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안진진이 겪는 사랑은 복잡하다. 그녀는 사랑을 믿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회의한다. 사랑은 따뜻한 감정이지만,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통해 위로받고자 하면서도, 정작 누군가가 다가오면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이런 모순은 단지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다. 그건 상처의 결과이자, 살아온 환경이 만들어낸 생존 방식이다. 진진은 한없이 여려 보이지만, 그 연약함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아는 강인함도 가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가족은 애증의 대상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지만, 진심을 나누는 일은 거의 없다. 가족은 늘 가까이에 있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무심하거나 잔인하기도 하다. 때로는 타인보다 더 모르는 존재가 가족이다.

『모순』 속 가족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진진은 그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어떤 가족은 너무 욕망에 휘둘리고, 어떤 가족은 사랑을 가장한 집착에 갇혀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누구도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사연을 품고 있으며, 그 사연만큼은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낸다.

 

이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이해받기 힘든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묘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 벽을 세우지만, 진진은 다르게 반응한다. 그녀는 모순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의미를 만들어간다.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명쾌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은 늘 모순을 안고 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렇기에 진진의 감정은 현실적이다. 그녀는 사랑 앞에서 설레기도 하지만,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가족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그 품 안에서 자신을 다시 세운다.

 

『모순』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사랑한다.” “가족은 멀고도 가깝고, 가깝고도 멀지만, 그 안에 나의 가장 깊은 뿌리가 있다.”

그 말들은 진진의 고백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진심이 페이지마다 살아 숨 쉰다.

 

 

3부 – 누구도 옳지 않고,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모순』은 명확한 구분을 거부하는 소설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릿한 세계. 양귀자 작가는 그 경계에 선 인물들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말한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누구도 온전히 틀리지 않았다.”

 

안진진이 마주하는 세상은 복잡하다. 사랑, 가족, 사회, 인간관계 모든 것이 단순하지 않다. 모두가 제 입장을 말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들은 종종 충돌하고, 그 충돌 속에서 진진은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한때는 분노하고, 한때는 이해하려 하며, 어떤 순간에는 그저 침묵한다. 그 침묵은 무기력함이 아니라, 판단할 수 없음에 대한 깊은 존중이다.

 

진진이 겪는 감정은, 한쪽의 편을 드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판단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의 말 뒤에 숨겨진 사연을 본다. 말은 날카롭고 행동은 미숙해도, 그 안에 담긴 사정만큼은 놓치지 않는다.

이 점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모순』은 어떤 인물도 일방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심지어 상처를 주는 사람조차, 결국은 이해받고 싶어 했던 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예컨대, 진진의 가족은 끊임없이 그녀를 시험에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그 가족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곳에서 그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 이해는 쉽지 않지만, 독자는 그녀의 시선 덕분에 모든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작품은 ‘모순’이 삶의 본질임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이고, 상황에 따라 감정은 바뀌며, 사랑과 미움은 공존한다. 이러한 모순된 감정은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인간답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진진은 스스로에게도 엄격하지 않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자신의 모순을 안고 살아간다. 그녀는 말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툴고 흔들려도, 결국 나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모순』은 우리가 쉽게 판단하고, 쉽게 단정짓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나뉘지 않으며, 인간은 더더욱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은 따뜻하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습이 결국 우리 자신의 거울이라는 걸 알게 한다.

 

『모순』은 말한다. “모순된 채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다.”

 

 

4부 – 말하지 못한 감정이 만들어낸 거리

『모순』의 인물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진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생각이 많고, 감정이 깊지만, 그걸 말로 풀어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이 소설의 진짜 언어는, 말하지 않은 순간들에 숨어 있다.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있다. 하지만 그 말들은 마음속에만 맴돌다 끝내 삼켜진다. 진진은 말하지 못한 감정이 얼마나 큰 간극을 만들어내는지를 하루하루의 일상을 통해 체감한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조금씩 외롭다. 그 외로움은 누군가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을 누구에게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그건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얼마나 크고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진진은 알고 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결국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무조건 털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님도 안다. 때로는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아간다.

 

『모순』의 문장은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페이지를 넘겨도 대사가 없이 인물의 내면만이 흐르는 구간들이 있다. 그 구간에서 독자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 역시 말하지 못해 놓쳐버린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닐까.”

 

진진은 그 거리 속에서 성장한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실망하고, 누군가는 그녀를 떠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진진은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배운다.

그 불가능 속에서 진진이 택한 방식은 ‘다시 다가가는 것’이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용기. 그 용기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울림이다.

 

『모순』은 말한다. 모든 감정은 반드시 말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어떤 감정은 오래 묵히는 것이 맞고, 어떤 감정은 말 대신 행동으로 전해져야 한다고.

 

진진은 그렇게 자신만의 언어를 배운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침묵과 시선과 기다림으로 표현하는 법을. 그건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진짜 마음이 닿는 방식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말하지 못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그 질문은 따뜻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미처 말하지 못한 그 감정들, 그조차도 관계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5부 – 그것마저도 삶이라면

『모순』을 끝까지 읽고 나면 마음속에 남는 건, 정답이 아니라 ‘수긍’이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모든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가족이라도 서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그런 사실들을 조용히 인정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비관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모순』은 아주 따뜻한 작품이다. 불완전함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사람들, 그 불완전함을 품고도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마음들이 이야기 전반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안진진은 결국 완벽해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변화한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부드러워지며, 조금 더 깊어진다. 그것은 결코 거창하지 않지만, 가장 진짜 변화다.

이 소설의 제목 ‘모순’은 인생을 설명하는 가장 정직한 단어다. 슬픔과 기쁨이 함께 있고,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며, 이해와 오해가 매일 교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진실이다.

진진은 그 진실 앞에서 회피하지 않는다. 가끔은 아파하고, 가끔은 원망하며, 가끔은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간다. 그 모습이 가장 큰 용기다.

『모순』은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모순을 안고 살아가고 있나요?” 그리고 대답 대신, 우리에게 이 한 줄을 건넨다. “그것마저도 삶이라면, 나는 오늘도 살아갈 것이다.”

그 말은 위로가 되고, 어떤 날에는 다짐이 된다. 세상의 빠른 속도와 날카로운 판단 속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진다. 그럴 때 『모순』은 조용히 손을 내민다. 괜찮다고,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불안, 후회, 부끄러움, 그리고 약함이 하나의 문장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나는 모순된 존재다. 하지만 그 모순 안에서 가장 나다운 무늬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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