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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리뷰

『쇼코의 미소』 감성 리뷰 – 조용한 말, 조용한 상처, 그리고 조용한 사랑

by new-story1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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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목차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가 풀어낸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각 편마다 말하지 못한 감정과 놓쳐버린 관계, 그리고 고요하게 흘러간 시간의 흔적이 녹아 있습니다.
이 감성 리뷰는 『쇼코의 미소』를 스포일러 없이 다섯 개의 감정적 주제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오래도록 남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1부 – 낯선 미소 속에서 마주한 나

『쇼코의 미소』를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조용함'이었다.
목소리를 낮춘 문장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서술, 인물들 사이의 거리감 있는 대화. 그 모든 요소들이 한결같이 독자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쇼코라는 인물은 그 조용함을 가장 선명하게 상징한다. 한국어를 배우러 온 일본인 소녀, 어색한 미소와 서툰 발음, 그러나 마음만은 진심을 담고 있는 존재. 그녀의 존재는 단지 외국인이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낯선 감정’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쇼코를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들, 부끄럽게 덮어뒀던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지금까지 외면해온 가족과의 거리. 쇼코는 말없이 그런 것들을 끌어낸다.

이 단편은 특별한 사건이 없다. 쇼코가 한국에 오고, 나와 며칠을 함께 지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독자는 수많은 정서적 움직임을 느낀다. 말보다 시선이, 행동보다 침묵이 더 크게 다가오는 그런 움직임이다.

쇼코는 늘 웃는다. 그 미소는 처음엔 단순한 친절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그 미소가 ‘버티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자리를 불편해하지 않기 위해, 말보다 미소로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택한 소녀. 그 조용한 전략이 오히려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쇼코의 미소』는 그렇게 ‘표현되지 않은 감정’의 서사다. 그건 누군가에게는 소극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읽어내면 알게 된다. 이 조용한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읽는 동안, 독자는 여러 번 멈춰 서게 된다. 한 줄의 문장, 한 장면의 시선, 한 번의 미소. 그 모든 것이 과거의 기억을 끌어올리고, 그 기억은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쇼코의 미소』는 소리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요한 목소리는 오히려 깊고 멀리 퍼진다. 쇼코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아무 말도 아니었다. 그녀의 미소가 남긴 건, ‘나는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이다.

 

 

2부 –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만든 거리

『쇼코의 미소』의 가장 큰 특징은 ‘말해지지 않는 것’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말하며, 중요한 순간에도 뭔가를 숨기고, 넘기고, 외면한다. 그 침묵이 처음엔 불편하다. 왜 이들은 말하지 않는 걸까. 왜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오해를 푸는 대신 돌아서는 걸까.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그 침묵은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절실한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쇼코의 미소』의 인물들은 감정을 내보내는 법을 모른다. 혹은 내보낼 수 없는 상처를 이미 너무 많이 겪은 사람들이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감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을 하면 감정이 쏟아질까 두렵고, 한 마디의 말이 관계를 무너뜨릴까 염려되는 마음. 그래서 그들은 미소를 선택하고, 의미 없는 일상적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우회하려 한다.

특히 이 단편집의 관계들은 늘 어긋나 있다. 사랑하지만 멀어지는 사람들, 미워하면서도 애써 애틋해지는 마음, 그리고 서로를 알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남는 거리감.

그 거리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의 두께다. 그리고 그 두께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들. 그게 이 책이 품고 있는 핵심 정서다.

독자로서 가장 큰 공감을 느낀 건, 바로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작가가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해내는지에 있었다. 최은영 작가의 문장은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도 인물의 내면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계속 떠올랐던 감정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끝내 말하지 못했던 경험이다. 무슨 말을 해야 했는지 알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순간. 그 말 한마디를 놓쳐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었던 장면. 그리고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을 붙잡고 있는 그런 기억들.

작가는 독자의 그 기억을 건드린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아주 부드럽게. 책은 말한다. “괜찮다. 너도 말하지 못했던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다른 형태로, 다른 관계로, 다른 장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쇼코의 미소』는 바로 그 감정의 복원을 시도한다.

이 책의 고요함은, 침묵의 무게만큼 묵직하다.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다잡게 된다. 누군가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이제라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온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알게 된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있고, 때때로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3부 – 너와 나 사이의 고요한 균열

『쇼코의 미소』 속 인물들은 언제나 거리를 유지한다. 이 거리감은 물리적인 것도, 감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 사이에 있는 건 ‘균열’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너무도 쉽게 생겨나고, 거의 복구되지 않는 균열.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그 균열을 굉장히 미세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친구, 가족, 연인, 동료. 어떤 관계든 간에 균열은 생긴다. 하지만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그 누구도 정확히 ‘그 순간’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친구 사이에 생긴 오해. 혹은 가족 안에서 반복된 침묵과 무관심. 연인 사이에 쌓여가는 엇갈림. 이 책의 모든 단편은 그런 균열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균열은 항상, 말보다 조용한 방식으로 파고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해받지 못함’에 대한 서술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심은 종종 전해지지 않고, 설명은 오해가 되고, 그 결과로 남는 것은 고립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고립된 방식으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대화를 멈추고, 누군가는 스스로 감정을 차단하고, 누군가는 떠나버린다. 그것이 최선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 외엔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립은 사회적인 조건에서도 비롯된다. 가난, 여성, 외국인, 청소년, 고립된 가족. 모두가 소외된 존재들이고, 그들에게 균열은 훨씬 더 치명적이다. 관계 안에서 단단한 신뢰를 쌓기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틈도 큰 상처가 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립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최은영 작가는 고요한 균열 속에서, 다시 손을 뻗는 장면을 보여준다. 완전히 연결되지는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들. 그 짧은 교차가 이 책을 감정적으로 더 깊게 만든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균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균열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틈 사이에 피어나는 감정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균열이 있어도 관계는 계속될 수 있어.”

『쇼코의 미소』는 그렇게 너와 나 사이의 고요한 틈을 응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감정의 빛을 보여준다. 그 빛은 세지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4부 – 사랑하지 않아도 남는 것들

『쇼코의 미소』를 읽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감정이 있다. 그건 분명 사랑은 아닌데, 사랑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머무는 감정. 애틋함, 그리움, 죄책감, 고마움, 외로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들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를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시간과 시선, 침묵은 분명히 무언가를 남긴다. 그 무언가는 단순한 인연이 아니다. 때로는 상처이기도 하고, 때로는 위안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의 탁월한 지점은 ‘사랑하지 않아도 남는 것들’에 대한 감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항상 사랑이나 연애 같은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 지나간 사람들, 스쳐간 타인들 사이에서도 작은 온기와 슬픔이 공존한다.

이 책은 그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감정은 이름 붙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그것이 이 작품들이 주는 가장 따뜻한 위로다.

사랑하지 않았지만,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평생 한 번도 손을 잡지 않았지만, 그 사람의 눈빛이나 말투가 마음에 남는 경우.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후회한다. ‘그때 왜 그러지 못했을까’, ‘왜 더 말하지 못했을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 그 감정들 또한 남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완전히 잊지 못한다.

『쇼코의 미소』는 그렇게 '남아버린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기억들. 그것이 사람을 만든다. 그것이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이별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이별은 항상 상실을 동반하지만, 그 상실이 무언가를 남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게 관계의 본질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젠가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책 속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쇼코의 미소』를 덮고 나면, 어딘가에서 스쳐간 누군가가 떠오른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왠지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 그것이 『쇼코의 미소』다.

 

 

5부 – 다시 돌아보는 자리, 그곳에 남은 이름

『쇼코의 미소』는 결국 ‘돌아봄’의 이야기다. 완전한 이해도, 해소도 없이 끝나는 이야기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우리를 한참 후에 다시 그 자리로 데려간다. 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들, 말로 하지 못했던 진심들, 그리고 그 안에 남은 이름들.

책 속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형으로 기억된다. 지금 이 순간보다는, ‘그때 있었던 누군가’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인물들이 과거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기억 속에 스며든 채로, 말없이 곁에 남아 있는 존재들이다.

‘쇼코’라는 이름 역시 그런 식으로 남는다. 아무것도 해명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미소 하나가 오랜 시간을 지나 화자의 삶 속 깊숙이 자리 잡는다.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의 중심이자,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하지 못한 말, 닿지 못한 감정, 그러나 어딘가에 남았을지도 모를 내 이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조용히 남아 있는 존재로서의 나.

『쇼코의 미소』는 독자에게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상처를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나, 그 기억들을 애써 외면하지는 말라고. 그 모든 조용한 흔적들이 결국 당신을 만든다고.

그렇기에 이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쇼코의 미소가, 화자의 죄책감이, 한 인물의 회한이, 그리고 당신의 과거가, 이 책 속 어딘가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보는 자리. 그곳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그 자리에 다시 돌아가는 일만으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쇼코의 미소』는 그 변화를 믿는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감정, 말보다 무거운 침묵,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이름. 그것이 이 책이 남긴 이야기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도 누군가의 미소가 조용히 떠오른다면 그건 이 소설이 당신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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