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1부 –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감정을 읽게 만드는 이야기
- 2부 – 고통 앞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
- 3부 – 감정과 폭력 사이, 인간다움에 대하여
- 4부 – 말이 아닌 방식으로 전해지는 마음
- 5부 – 감정이 아니라 관계가 사람을 만든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를 통해 감정의 본질과 인간다움의 의미를 되묻는 감성 성장 소설입니다.
이 리뷰는 스포일러 없이 다섯 개의 파트로 나누어, 고통, 관계, 침묵, 그리고 이해의 과정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남기는 『아몬드』의 세계를 함께 천천히 들여다봅니다.
1부 –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감정을 읽게 만드는 이야기
소년은 아팠다. 하지만 아픈 줄 몰랐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뇌 구조로 인해 공포나 분노, 슬픔 같은 기본 감정을 ‘제대로’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소리를 지르지 않으며, 누가 죽어도 울지 않는다.
세상은 그런 아이를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재는 그런 시선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을 배워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사랑하는 엄마와 외할머니 아래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성장한다. 다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느끼고 표현하며 자라지만, 윤재는 머리로 ‘학습’하고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럴 땐 사람들이 울어. 그러니 너도 고개를 숙여야 해.”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놀라. 그러니 그 단어는 입 밖에 꺼내지 마.”
세상은 윤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아몬드』의 가장 강렬한 시작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차분히 살아가던 윤재의 일상이 한순간의 폭력으로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다.
그 사건 이후, 소설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독자가 이 소년의 내면을 얼마나 천천히, 조심스럽게 따라가야 하는가다.
윤재는 우리처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를 따라 읽는 우리는, 그 어떤 소설보다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이가 눈물을 보이지 않아도, 그 아이의 침묵은, 때로는 어떤 외침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때로는 ‘가장 큰 감정’이 된다.
윤재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감정을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기록한다. 사건을 말하고, 행동을 묘사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간결한 문장들 사이에서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가 웃을 때 따라 웃는 법을 배우고, 울고 싶지 않아도 울어야 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화가 나지 않아도 화내는 척하는 법을 익히며.
이 책은, 그런 소년의 일기를 읽는 듯한 감정이다.
잔잔하지만 단단한 서술, 울지 않지만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들, 그리고 결국엔 독자에게 감정을 ‘가르치는’ 이야기.
놀랍게도,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를 통해 가장 깊고 따뜻한 감정을 일깨운다.
그건 사랑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고, 혹은 죄책감이나 슬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있는 감정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는 윤재를 이해하고 싶어지고, 그와 닮은 누군가를 기억하게 되며, 결국엔 스스로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몬드』의 첫 장은 조용하다. 하지만 읽는 사람의 내면에는 파문처럼 퍼지는 감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파문은, 책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2부 – 고통 앞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
『아몬드』는 상처에 대해 말한다. 그것도 아주 깊고 오래된 상처들에 대해.
하지만 그 상처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고통은 눈물이나 비명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고통은 오히려 더 무섭고 진실하다.
폭력의 장면은 적나라하지 않지만, 그 이후의 침묵이 주는 무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사람들은 흔히 ‘표현된 감정’을 통해 상대를 이해한다. 하지만 윤재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주 오해받고, 때로는 냉정하거나 차가운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는 자주 ‘괴물’이라 불린다.
그 단어는 이 소설 속에서 단지 신체적 특이함이나 병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때, 쉽게 붙이는 이름이다.
누군가가 우리의 기대만큼 슬퍼하지 않거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 분노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상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몬드』는 묻는다.
“과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일까?”
그리고 소설은 점점 그 질문의 답을 향해 나아간다.
윤재는 표현하지 않지만, 분명히 느끼고 있다.
사랑하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사라진 자리, 지켜내지 못한 기억,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앞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그의 일기에는 아픔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가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고통을 그는 침묵 속에서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몬드』는 묻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지켜본다.
그는 괜찮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고통을 견디는 중일 수 있다.
그 침묵 속에서 독자는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지나치게 규정하려 한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소리쳐야 해.”
그러나 이 책은 그 공식에서 벗어난 감정도 존재할 수 있으며, 그 감정들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보여준다.
윤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해야 할 말보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더 많이 기억하게 된다.
그건 사회가 강요한 배움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배움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목격한다.
‘괴물’이라는 단어는 실은 가장 큰 폭력일지도 모른다.
그 단어 안에는 이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고, 다르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는 이기심이 숨어 있다.
『아몬드』는 그 단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단어 너머에 있는 진짜 사람을 보여준다.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감정을 가르친다.
그의 조용한 하루, 말 없는 선택, 그리고 아주 느린 변화 속에서 우리는 고통이란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고통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언어로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울림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남는다.
3부 – 감정과 폭력 사이, 인간다움에 대하여
『아몬드』는 단순히 감정을 잃은 소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책이 묻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감정을 느끼고도 폭력적인 사람 중 누가 더 위험한가?”
소설 속에는 윤재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반대 극점에 있는 소년.
그는 감정을 지나치게 격렬하게 느끼고, 표현을 통제하지 못하며, 결국 분노와 폭력으로 삶을 소화해낸다.
이 둘은 너무나 다르다. 한 명은 차갑고, 다른 한 명은 뜨겁다.
한 명은 너무 조용하고, 다른 한 명은 지나치게 요란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서로를 통해 조금씩 변화한다.
윤재는 그 소년을 통해 감정의 온도를 체감하고, 그 소년은 윤재를 통해 침묵과 절제를 배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또 서로에게 유일한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 관계는 단순한 우정도, 대립도 아니다. 그건 하나의 긴 ‘대화’다.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와, 감정이 너무 커서 파괴하는 자.
이 둘의 대화는 소설 내내 긴장과 충돌을 낳지만, 그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든다.
감정을 가진다는 건 단지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인간의 품격을 만든다.
누군가는 슬퍼서 우는 대신에 폭력을 택하고, 누군가는 화가 나도 손을 들지 않는다.
윤재는 감정을 배우며, 감정보다 더 중요한 ‘선택’을 배운다.
세상은 윤재에게 말한다. “넌 이상해. 제대로 반응해.”
하지만 이 세상이야말로,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채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아몬드』는 폭력에 대해 섣불리 분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폭력의 기원을 들여다본다.
그 사람은 왜 그런 방식밖에 몰랐을까?
그리고 누군가는 왜 그걸 참고 견뎠을까?
이 소설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선을 긋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름 아래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아픈 사람일수록 그 고통을 풀 방법을 몰랐다는 걸 이해하게 만든다.
윤재와 그 친구는 결국 서로를 통해 감정은 단지 반응이 아닌 연결의 언어라는 걸 깨닫는다.
감정을 느끼는 일보다,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공유의 순간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지를 보여준다.
폭력은 감정을 지운다. 하지만 관계는 감정을 복원한다.
『아몬드』는 바로 그 복원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4부 – 말이 아닌 방식으로 전해지는 마음
우리는 대부분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 한다.
“괜찮아.” “힘들었겠구나.” “사랑해.”
하지만 『아몬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말보다 행동, 표정보다 눈빛, 소리보다 침묵으로 감정을 전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는 어렵다.
그는 애정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매일 외할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엄마가 일기장을 써주며 가르친 단어들을 반복 학습한다.
감정을 모르는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오히려 감정의 본질에 더 가깝다.
그의 감정은 ‘표현’이 아니라 ‘존재’로 증명된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진심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말한다.
“감정은 꼭 말로만 표현되어야 할까?”
윤재는 화를 내지 않는다. 슬픔에 무너지지 않는다. 기쁨에 웃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엄마가 좋아하던 책을 꺼내 들고, 외할머니가 아끼던 꽃을 화분에 심는다.
그 모든 행동에는 그가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알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침묵 속에 흐르는 공기의 온도, 눈길이 닿는 곳에 숨겨진 애정, 무표정 속에 숨겨진 배려.
『아몬드』는 감정을 단어로만 측정하지 않는다.
그건 마음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전하는 다른 언어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생각보다 더 정직하다.
윤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는다.
그의 감정은 항상 ‘있는 그대로’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말하지 않아도 믿게 된다.
그 소년이 지금 어떤 마음일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믿음은 언어보다 강하다.
이 책이 위대한 이유는, 그 믿음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말로 사랑한다고 수백 번 외쳐도 한 번의 진심 어린 행동을 이기지 못하듯, 『아몬드』는 그런 ‘조용한 사랑’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그건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건넬 수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말이 아니라 눈빛과 자세와 행동으로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이 책은 그렇게, 말이 부족한 이들의 사랑도 충분히 깊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5부 – 감정이 아니라 관계가 사람을 만든다
『아몬드』는 감정에 대한 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 책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다름을 안고 있었다. 그 다름은 외로움을 낳고, 그 외로움은 침묵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엔, 어눌하지만 정성껏 사랑을 가르쳐준 엄마와 할머니가 있었고, 거칠지만 솔직한 친구가 있었으며, 그를 바라봐주는 또 다른 눈이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윤재는 ‘감정’이 아닌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알아간다.
이 소설은 말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건,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윤재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이 아플 때 함께 앉아 있고, 혼자 남은 이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그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한다.
그리고 그런 윤재를 통해 우리는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덮으며 떠오르는 것은 ‘아몬드’라는 단어도, ‘병’이라는 설정도 아니다.
가장 또렷하게 남는 건, 윤재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각자 불완전했지만, 함께였기에 온전해졌다.
윤재와 엄마, 윤재와 친구, 윤재와 자신.
그 연결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우리는 흔히 ‘나 자신’만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고.
이 소설은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 서툰 마음을 기다려주는 시간, 상처받은 이에게 손 내미는 용기의 가치를 말한다.
그건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아몬드』는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봤는지, 또 얼마나 자주 우리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어주었는지.
그 물음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아마 그게 이 책이 우리를 바꾸는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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