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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리뷰

『파과』 감성 리뷰 – 조용한 삶 속의 폭발, 우리가 외면한 감정의 잔해

by new-story1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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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감성 리뷰

 

목차

 

 

『파과』는 구병모 작가가 그려낸, 평범하지 않은 삶을 평범하게 견뎌가는 한 중년 여성 킬러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범죄, 폭력, 감정의 결핍 같은 자극적 소재를 매우 고요하게 풀어내며, 인간 존재의 외로움과 고독, 책임의 무게를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이 리뷰는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포일러 없이 『파과』의 정서와 서사를 감성적으로 분석합니다.

 

 

1부 – 외로움은 어떻게 조용히 살아가는가

『파과』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독자는 묘한 고요함 속으로 빠져든다.
주인공은 이름 없이 등장하고, 중년의 여성이라는 단서만으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그녀는 킬러다. 하지만 그 어떤 자극도 없다. 오히려 무미건조하다. 그 말투, 그 눈빛, 그 동작에서 우리는 느낀다. 이 인물은 오랜 시간 삶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의 외로움은 거창하지 않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존재, 주변부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이름 없는 채 살아가는 사람의 외로움이다.

이야기는 차가우면서도 따뜻하다. 감정이 극단으로 흘러가지 않기에, 독자는 오히려 더 깊이 그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녀는 거칠게 사랑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대신 사물의 배치, 걷는 동선, 일상적 루틴 속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 일상의 조용한 결들이 『파과』를 특별하게 만든다. 킬러라는 설정은 극적이지만, 이 이야기는 극적이지 않다. 그 차이가 이 소설의 감정을 더 묵직하게 만든다.

 

 

2부 – 중년 여성 킬러라는 역설

소설은 계속해서 킬러라는 단어의 통념을 뒤흔든다. 젊고 날렵하고 피비린내 나는 존재가 아닌, 나이가 들고 관절이 굳은, 그럼에도 여전히 차갑게 일을 해내는 한 인간의 얼굴을 그린다. 그녀의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녀가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단절은 언제나 인간을 무섭게 만든다. 그 고요한 살기가 『파과』 전반을 관통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안다. 마트에서 할인된 고구마를 고르며, 낡은 신발끈을 손질하며, 옥상에 앉아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무심한 듯하지만 그 모든 행동은 삶을 버텨내기 위한 노력이다. 그녀의 킬러로서의 삶은 폭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철저하게 단정하다. 그 질서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읽는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감당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무표정함. 『파과』는 그 역설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3부 –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인간은 고통스럽다. 『파과』의 주인공 역시 감정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다. 그녀는 표면적으로 아무 감흥도 없는 듯 행동하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 누군가와의 스침, 예상치 못한 사소한 친절에 의해 흔들린다. 그리고 그 순간, 독자는 숨을 멈춘다. 그녀에게 감정이 있었다는 것, 그 감정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 우리를 울린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곧,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가가는 순간은 항상 두렵다. 『파과』는 그 두려움을 직시한다.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그 진실 앞에서 말없이 머문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고 버텨온 것. 그 차이는 이 작품을 단순한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건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4부 – 파과, 무너짐을 견디는 시간

“파과(破果)”란,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썩어 무너진 과일을 뜻한다. 이 단어는 소설의 핵심이다. 외면은 온전해 보이지만, 내면은 이미 오래전에 금이 가버린 사람들. 『파과』는 그런 이들의 초상이다. 주인공만이 아니라 그녀가 마주하는 세상 모두가 파과다. 조용한 폭력, 말 없는 체념, 피로한 일상. 이 모든 것이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누구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너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참 슬프다. 누구도 대성통곡하지 않고, 누구도 눈물 흘리지 않지만, 책장을 덮으면 고요한 슬픔이 가슴을 친다. 그것이 파과의 감정이다. 이 무너짐을 견디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주인공의 삶이고, 독자의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균열을 안고 살아간다.

 

 

5부 – 흔적 없이 남은 마음의 기록

『파과』는 끝내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모든 감정은 독자의 몫이다. 주인공은 떠난다. 혹은 남는다. 살아낸다. 혹은 버틴다. 그 모든 것은 설명되지 않기에 더 강하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파과』라는 제목은 그래서 곧 우리 자신이다. 이미 균열 난 마음, 무너짐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일. 그 일상을 견디는 법에 대해 묻는 책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감정을 확인하고, 위로받는다. 『파과』는 위로조차 조용하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날, 문득 이 문장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나도 파과였구나.” 그렇게 이 책은 끝나지 않고,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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