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추리소설의 교과서이자 인간 심리의 심연을 가장 치밀하게 파헤친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 명씩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공포와 의심, 죄책감에 휩싸이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리뷰에서는 작품의 흐름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5부로 나눠 살펴보며 결국 남는 질문 ― 인간은 과연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 를 함께 되짚어보겠습니다.
1부 – 초대받은 손님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첫 장면은 불안하지만 묘하게 들뜨기도 한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각기 다른 계층,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열 명의 사람들이 ‘U.N. 오언’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외딴 섬으로 향한다. 저마다의 기대와 호기심을 안고 찾아온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모른다.
이 소설에서 섬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곳은 문명과 사회적 규범에서 완전히 떨어진 공간으로, 곧 인간 본성과 죄책감, 공포가 맨 얼굴로 드러나는 심리적 밀실이 된다. 초대장을 받고 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애거서 크리스티는 긴장과 불안을 촘촘히 심어둔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젊고 당찬 비서 베라 클레이손이다. 그녀는 새 직장을 얻었다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지만, 마음속 한편엔 잊지 못할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법관 로저스 경, 장군 맥아더, 의사 암스트롱, 날카로운 롬바드, 소심한 블로어, 그리고 다른 이들까지. 크리스티는 각자의 사소한 대사와 시선을 통해 독자에게 힌트를 흘린다. 이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바로 이 ‘서서히 조이는 심리’다. 단서와 복선을 거창하게 깔기보다는, 짧은 대사와 사소한 행동으로 독자가 스스로 의심하게 만든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섬은 점점 외부와 단절된다. 작품 초반이지만 이미 독자는 이들이 결국 갇히게 될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예감은 곧 현실이 된다.
저녁 식탁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정체를 조심스레 탐색한다. 하지만 아직은 건조한 예의와 농담이 오간다. 바로 그때, 식탁 옆 축음기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목소리가 이 작품의 본격적인 공포를 알린다. U.N. 오언의 이름으로, 각 사람의 과거 죄악이 폭로된다. ‘당신은 누구를 죽였는가?’ 그 한 문장은 열 명 모두의 혈관을 얼어붙게 만든다.
여기서부터 독자의 숨도 함께 가빠진다. 누구 하나 순수하지 않고, 누구 하나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정중하고 유쾌했던 식탁은 곧 싸늘하게 굳어버린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인간 심리의 가장 본능적인 부분 - 죄를 들켰을 때의 공포, 자신을 변명하려는 이기심 - 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마지막은 섬이라는 공간의 불가피함을 확인시키며 끝난다. 폭풍우로 인해 배는 끊겼고, 전화도, 전신도, 어느 것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죄를 알고 있는 열 사람만이 남았다. 그리고 독자는 그 순간부터 ‘이 중에서 누가 죽을까’를 궁금해하는 동시에, ‘내가 이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단순 추리소설을 넘어 심리소설, 인간 본성의 탐구서로 불리는 이유다.
2부 – 심문처럼 흘러가는 저녁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부는 마치 심문실처럼 변해버린 거실에서 시작된다. 축음기가 폭로한 ‘살인의 명단’은 그들을 한데 묶고 동시에 갈라놓았다. 누군가는 억울하다고 고함치고, 누군가는 차갑게 침묵하며, 누군가는 잔잔히 변명을 늘어놓는다. 서로의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후, 이제 그들은 상대방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려 안간힘을 쓴다.
가장 먼저 동요를 보이는 건 에밀리 브렌트다. 독실한 종교 신자이자 자기 확신이 강한 그녀는 “나는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반복하며, 자신의 과거를 죄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이 장면은 인간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얼마나 강력한 믿음을 이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진실보다는 ‘내가 옳다’는 확신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도덕과 신앙조차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반면 의사 암스트롱은 크게 동요한다. 술에 취해 저지른 과오를 뼈저리게 후회하지만, 그 죄를 완전히 인정하기에는 여전히 자신을 변명하고 싶어 한다. 그의 땀에 젖은 손과 흔들리는 목소리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얼마나 세밀히 인간 심리를 묘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은 손짓, 눈길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몸짓으로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포착한다.
그리고 이런 긴장 속에서 로저스 부부가 준비한 저녁이 이어진다. 웃음도 대화도 없는 식탁 위로 무거운 공기만 가득하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시 모인 응접실에서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더듬어 내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입장에서 본 진실’일 뿐이다. 진짜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 그들 스스로도 완전히 마주하지 못한 채 얼버무린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장면들을 통해 인간 본능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모두가 같은 방 안에 있지만, 그 마음속에는 서로를 향한 의심과 자기보호 본능만이 가득하다. 의기투합해 탈출 계획을 세우거나, 죄를 반성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따뜻한 장면은 없다. 오히려 더욱 차갑게 서로를 재단하고, 자신이 혹시 희생양이 될까 두려워 눈치를 본다.
이 와중에 흘러나오는 동요의 한 구절이 배경음악처럼 반복된다. “열 꼬마 인디언들이 식사를 했지, 그 중 하나가 목이 막혀 아홉이 남았네…” 이 어린 노랫말은 잔혹함을 더욱 선명히 한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예고하며, 이제 곧 하나가 줄어들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독자는 숨을 고르고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은 시작된다. 첫 번째 죽음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한 사람이 쓰러지고, 모두는 경악한다. 그들은 처음엔 이것이 사고라고, 단순한 불행이라고 믿으려 애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부터 이 섬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며, 이 방에 모인 사람들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심리 추리’가 시작된다. 범인을 찾으려는 추리가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내면에서, 자신의 죄와 두려움을 마주하는 심리적 추리. 애거서 크리스티는 관객에게 사건의 전모를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스스로 그 불안을 느끼도록, 누구도 믿을 수 없도록, 철저히 심리의 미로 속에 우리를 가둔다.
이렇게 마치 심문실과도 같은 살벌한 저녁 시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나는 죄가 없는가?”를 자문하게 만든다. 당신이라면, 그 거실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에밀리 브렌트처럼 끝까지 자신의 의를 주장하며 죄책감을 밀어낼 것인가? 이 소설은 그 물음을 차갑게, 그러나 아주 인간적으로 던진다.
3부 –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밤
섬 위의 밤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것 같은 정적 속에서, 게스트하우스 내부는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미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고,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조차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로저스 부부는 진정제를 먹고 몸을 떨며, 젊은 해군 장교 롬바드는 집안 곳곳을 점검하고 돌아다닌다. 블로어는 경찰 출신답게 거칠게 사람들을 다그치며 범인을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이 모두가 공허한 몸짓일 뿐이다. 섬에는 이미 탈출구가 없다. 배도 오지 않고, 전화선은 끊겼으며, 육지에서 구조가 올 가능성도 멀다.
특히 인상 깊은 건 서로를 향한 신뢰의 부재다. 같은 공간에서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지만, 누구 하나 마음을 터놓지 않는다. 이름만 들으면 귀족적인 저스티스 워그레이브조차 마음속으로는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 그는 법정에서 수십 명을 판결했던 노판사답게, 머릿속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증언을 하나씩 대조하며 냉정히 가능성을 따져본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들은 더욱 불안에 질린다. 작은 물소리, 마룻바닥의 삐걱임조차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살인의 발자국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어김없이 어린이 동요가 다시 등장한다. “아홉 꼬마 인디언이 늦게까지 깨어 있었지, 그 중 하나가 잠들어 여덟이 남았네…” 벽난로 옆에 세워진 인디언 인형들은 죽을 때마다 하나씩 사라지거나 깨진다. 이 잔혹하고도 기괴한 연출은, 마치 어떤 초월적 존재가 그들을 심판하고 있는 것 같은 공포를 자아낸다.
그리하여 두 번째, 세 번째 죽음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약을 과다 복용하고, 누군가는 잠든 사이에 살해당한다. 사건이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서서히 제정신을 잃는다. 살아남기 위해 협력해야 함을 알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가장 위험한 적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이 심리적 모순이 독자를 더욱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가 뛰어난 점은 피비린내 나는 살인을 대규모 액션이나 잔혹함으로 묘사하지 않는 데 있다. 그녀는 조용한 대화, 조금씩 변하는 사람들의 표정, 불안으로 덜덜 떠는 손가락 같은 디테일로 공포를 서서히 쌓아 올린다. 그래서 피가 튀는 장면은 거의 없지만, 읽는 사람의 심장은 더 거세게 뛰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테마는 ‘죄책감이야말로 최고의 족쇄’라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 끔찍한 죄책감에서 도망치지 못한다. 어쩌면 살인은 그들에게 내려진 하나의 형벌일 뿐이다.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던 자들은 결국 그 죄로 인해 죽음 앞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한다.
밤은 길다. 그리고 독자 역시 이 인물들과 함께 그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 죽음을 당할 때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눈빛은 더 공허해진다. 이 공포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페이지를 넘기며, 누가 다음일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4부 – 죄와 심판의 잔혹한 무도회
섬은 더 이상 휴양지가 아니다. 그곳은 완전한 심판의 장소, 살아 있는 죄인들이 순서대로 처형당하는 거대한 무대로 바뀌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방을 잠그고, 무기를 숨기며, 의심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 모든 방어가 사실 얼마나 허약한지,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기서 ‘심리 스릴러’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들은 더 이상 살인을 예방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 순서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며 초조하게 몸을 웅크린다. 누구와도 편안히 대화하지 못하고, 밤에는 잠조차 깊게 들지 못한다. 서로를 감시하며, 동시에 자신조차도 믿지 못한다. 자신이 혹시 이상한 짓을 하진 않을까 의심하는 것이다.
무도회처럼 차려 입었던 그들은 이제 옷차림조차 흐트러지고, 깊은 주름과 초점 없는 시선만이 남는다. 서서히 고립감이 살을 파먹는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도 이제는 살인의 예고처럼 들린다. 기괴하게 깨진 인디언 인형 하나가 다시 그들의 공포를 확인시킨다. “일곱 꼬마 인디언이 나무를 하고 있었지, 그중 하나가 도끼에 맞아 여섯이 남았네…” 잔혹한 동요는 예언처럼 한 사람씩 지워질 때마다 더 서늘해진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사람들이 이미 범인을 잡으려는 의지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초반에는 서로를 추궁하고, 탐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무력하다. 차라리 체념에 가깝다. 마치 “나는 어차피 벌받을 사람”이라고 스스로 중얼이는 듯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애거서 크리스티가 설계한 가장 섬뜩한 심리적 지옥이다.
살인자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리고 더욱 정교하게, 더욱 잔혹하게 그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밤마다 사라지는 사람들. 남은 자들은 공포에 떨며,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묘하게 단결하는 척 한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엔 언제나 “혹시 너냐?” 하는 질문이 붙어 있다.
이 무렵부터 독자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긴장한다. 누구의 방에서 비명소리가 날까? 누구의 침대에서 차가운 시체가 발견될까? 살아남은 이들이 늘어놓는 자기 변명은 점점 진정성을 잃어가고, 진실보다 공포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운다. “어쩌면 아무도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혹은, 모두가 범인일 수도 있다.” 이 기괴한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크리스티는 이 지점에서 독자에게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죄책감에 휩싸인 채 고립된 공간에서, 누군가 하나씩 사라질 때, 당신은 과연 이성적으로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점점 망가져 가며 자기 보존에만 몰두할까? 그 질문이 독자의 심장에 오래 남아 찝찝하게 만든다.
그렇게 죄와 심판, 그리고 공포의 무도회를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살아 있는 자들은 이미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기묘하게도 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이제 마지막 5부에서 우리는 이 모든 비극의 끝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5부 –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 장르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를 입증한다. 마지막 인물이 죽은 뒤, 섬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 10명이었던 손님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결국 제목처럼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마치 유령 같은 정적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된다.
이 결말이 충격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완벽한 비극. 그리고 둘째는, 독자조차 끝까지 범인을 확신하지 못한 채 모든 사건이 종료된다는 점이다. 크리스티는 마지막까지 힌트를 교묘히 흩뿌리되 결코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도 머릿속은 복잡하게 맴돈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소설의 가장 마지막, 일종의 에필로그 형식으로 바다에서 건져 올린 병 속의 편지가 독자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이 편지는 범인의 고백이다. 모든 살인은 완벽하게 설계되었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고. 그리고 범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 또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고백을 읽는 순간, 우리는 소름이 돋는다. 범인은 이미 죽어 있다. 즉,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으며, 그저 남은 사람들은 이 기괴한 사건의 끝에서 망연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소설을 통해 ‘정의와 심판’이라는 테마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법정에서 처벌받지 않은 사람들을 이 ‘섬’이라는 무법지대에서, 완벽히 개인의 손으로 심판한다. 범인은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처럼 자처하며, 인간의 죄를 하나씩 드러내 벌을 주었다. 이 섬은 말하자면 인간이 만든 지옥이자 도망칠 수 없는 내면의 법정이었다.
그러나 독자는 불편하다. 우리는 그들의 죄가 정말 죽음으로 갚아야 할 만큼 무거웠는지, 그리고 과연 어떤 인간에게 타인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지, 불가피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소설이 끝난 후에도 오래 남아 독자를 괴롭힌다. 결국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죄와 벌’, ‘심판과 구원’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들이민다.
이 마지막 에서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무(無)’로 귀결되는 결말이다. 모두 사라진 빈 방, 깨진 인디언 인형, 정적뿐인 섬… 독자는 마치 허공 속에 홀로 남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이 정적이야말로, 크리스티가 보여준 가장 섬뜩한 장면이다. 사람은 사라져도, 죄책감과 공포는 이 공간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우리는 묻는다. “그 끝은 과연 정의로웠을까?” 그리고 어쩌면 크리스티는 그 답을 끝까지 주지 않기 위해, 이 작품을 이렇게 불완전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마무리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그래서 고전 중의 고전이며,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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