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생활/책 리뷰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by new-story1 2025. 7. 8.
반응형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목차

 

『인간 실격』은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책은 한 인간이 철저히 파멸해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잔혹하게 보여주며, 읽는 이의 내면 깊은 곳까지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여기서는 이 소설을 5부로 나누어, 주인공 요조의 감정과 붕괴의 단계를 따라가며 그 의미를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1부 –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인간 실격』의 첫 문장은 이미 독자를 차가운 심연으로 끌어당깁니다.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이 한마디에 주인공 요조의 삶과 소설 전체의 기조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요조는 이 세상과 단절된 채 태어난 듯한 인물입니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지 못하고, 늘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얻으려 애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연기일 뿐입니다.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자신의 내면과 타인을 철저히 구분합니다. 그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도, 속할 수도 없는 낯선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애써 광대가 되어 사람들을 웃기고,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 존재'임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두려움과 불안이 있습니다. 자신이 언제 발각되어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 그 공포는 결국 "인간으로서 나는 실격"이라는 자기혐오와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이 소설의 첫 장은 독자로 하여금 강제로 요조의 시선에 들어서게 만듭니다. 마치 가면 뒤에서 땀을 흘리며 연기하는 광대의 눈빛을 마주친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는 사람들 틈에서 늘 웃고 있지만, 사실 그 내면은 기괴할 정도로 공허하고,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은 독자의 마음에도 서서히 스며들어, 묘한 동질감을 자아냅니다.

 

요조의 어린 시절 묘사는 짧지만 강렬합니다. 그는 부모나 형제와도 진심으로 연결되지 못하며, 늘 머릿속으로만 생각을 되풀이합니다. 아무리 어른들이 웃어주고, 친구들이 곁에 있어도 요조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을 출발선부터 뒤틀리게 만드는 근원적인 고립입니다.

 

요조라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 자신을 ‘실격자’로 규정하게 되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단순한 열등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떤 인간보다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예민하게 공기를 읽었기에 느낀 절망입니다. 그에게 인간은 너무 복잡하고, 잔혹하며, 알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망쳤습니다. 그 도망의 시작이 바로 ‘광대짓’이었고, 그것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됩니다.

 

 

2부 – 가면 뒤의 광대

 

요조가 청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사회로 나아가면서 그의 ‘광대짓’이 점점 더 교묘하고 위태로워지는 과정을 다룹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농담을 던지고, 자신의 우스꽝스러움을 과장함으로써 타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로 보이려 합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그를 유쾌한 친구로 여겼지만, 그 속에서 요조는 서서히 자신을 지워가고 있었습니다.

 

요조가 선택한 생존법은 ‘타인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무도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늘 웃음을 터뜨리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을 농담으로 돌려버리며 결국 상대방조차 더 이상 그의 속을 알려고 하지 않게 만듭니다. 요조에게 그것은 일종의 방패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패는 점점 그를 깊은 고립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청년 요조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바보 같은 장난으로 사람들을 웃기면서도, 밤이 되면 혼자 방 안에서 끝없는 불안을 느낍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누구와도 진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의식합니다. 그 고독은 무섭도록 선명해서, 책을 읽는 독자마저 차가운 공기 속에 홀로 선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시기의 요조에게 중요한 존재가 하나 생깁니다. 바로 ‘여자’입니다. 요조는 여자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잠시나마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채웁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어린 사랑이 아닌, 자기혐오를 덜어내기 위한 도피일 뿐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에게 쉽게 몸을 내주고,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이 아직도 필요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위로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요조는 어느 순간, 자신이 상대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상대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저 서로의 외로움을 잠시 덮어줄 뿐인 관계, 그뿐입니다. 그리고 관계가 끝난 뒤에 남는 것은 더욱 깊은 허무와 자기혐오뿐이었습니다.

 

가장 서늘한 부분은 요조가 스스로를 ‘타락시키는’ 장면들입니다. 그는 더 이상 ‘좋은 인간’으로 남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술과 여자를 반복적으로 탐닉하며 무너져갑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농담을 던지며 사람들을 웃기지만, 그 웃음 뒤에는 “나는 이미 인간으로서 망가진 사람”이라는 깊은 체념이 깔려 있습니다. 그 체념이야말로 요조를 진짜로 위험하게 만드는 독소였습니다.

 

요조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너무 쉬웠다. 그들은 내 웃음과 농담을 좋아했고, 내 슬픔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이 문장은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정수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면, 진심으로 괜찮을 거라 믿어버립니다. 그 배려는 사실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요조의 가면극을 더 깊이 파고듭니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혹시 누군가의 가면만 보고 진짜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또, 혹시 우리 스스로도 타인 앞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나는 괜찮아”라는 거짓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자이는 요조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 각자의 가면을 슬그머니 만져보게 만듭니다.

 

 

3부 – 부끄러움과 파멸

 

요조가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가면 뒤에서 완전히 파멸로 내몰리는 과정을 담는다. 앞서 그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광대처럼 살아가며 자신을 보호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유지될 수 없는 허상이었다. 결국 그의 내면에 켜켜이 쌓였던 부끄러움과 공포가 터져 나오며 그를 나락으로 빠뜨린다.

 

요조가 반복적으로 내뱉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부끄러운 존재’라고 느낀다.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지 못하는 것도,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도, 그리고 그들의 온기에 스스로를 내맡기지 못하는 것도 모두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결격자임을 이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요조는 더 노골적으로 파멸을 향해 달린다. 술과 여자, 도박과 방탕. 그는 자신이 더럽혀질수록, 즉 ‘인간 이하’로 떨어질수록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렇게 무너지고 나면 더 이상 기대받지 않아도 되고, 실망시킬 두려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역설적인 안도감이 요조를 더욱 깊은 구렁텅이로 끌어당긴다.

 

특히 이 파트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요조가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그에게 인간다운 모습이란 이미 오래전에 실격 처리된 것이며, 더럽혀질수록 오히려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끔찍하지만, 동시에 잔혹할 정도로 솔직한 심리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조금 더 깨끗하고 올바른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을 뿐, 요조처럼 ‘아예 무너지면 편하다’고 은밀히 갈망하는 구석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유는 결코 해방이 아니었다. 요조는 결국 중독과 타락 속에서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든다.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점점 흐릿해지며, 자존감이라 부를 만한 것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웃기려는’ 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 실격』 3부를 읽다 보면, 요조가 마치 오래된 버려진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귀엽고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미 곳곳이 찢기고 더러워져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존재. 그리고 더 이상 돌이킬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존재. 그 모습은 동시에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또 어떤 이상한 위안을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그에게서 자신의 부끄러움과 패배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다자이는 이 부분에서도 단호하게 독자를 밀어붙인다. 그는 요조를 구원하지 않는다. 아니, 요조 스스로도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구원이란 더 이상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아서, 괜히 입었다가는 더 초라해질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요조는 끝까지 부끄러운 자신을 인정하고, 추락의 길을 걸으며, 비틀거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불편하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인간적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더럽고 연약한 감정들을 이 책은 무자비하게 꺼내 보여 준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정말 인간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믿는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요조를 보며 혀를 차다가도, 결국 자신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된다.

 

 

4부 – 고백과 최후

 

요조의 생을 꿰뚫어 보듯 날카롭게 조여 오던 파국이 마침내 형태를 드러내는 장이다. 이 부분에서 요조는 모든 가면을 벗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토해 내듯 고백한다. 그의 글은 소설의 형태를 띠지만, 사실상 작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자전적 절규에 가깝다.

 

이 장에서 요조는 더 이상 자신을 미화하지 않는다. 웃기지도 않고, 철없는 농담도 던지지 않는다. 그는 술과 마약, 그리고 부도덕한 관계 속에서 자기 파멸을 향해 돌진해온 날들을 고백한다. 그 모든 것이 부끄럽고, 치졸하며,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 하지만 요조는 더 이상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무겁게, 그리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그의 고백에서 가장 처연한 대목은, 자신의 삶이 ‘실격’임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았다는 부분이다. 요조는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온기, 그리고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리거나, 술과 향락으로 무감각하게 만들며 ‘살아 있는 척’을 했을 뿐이다.

 

이때의 요조에게 ‘고백’은 구원의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속죄와 고백을 통해 마음을 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조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더러움과 무가치함을 그대로 내보임으로써 오히려 마지막 남은 자존을 지킨다. “봐라, 나는 이 정도로 비참하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기대하지 마라.” 그것이 그의 마지막 방어이자 체념이다.

 

이 파트에서 요조는 과거의 여성들, 친구들, 자신을 떠난 사람들을 회상한다. 그들은 그를 구원할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의 삶을 조금은 덜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존재들이다. 하지만 요조는 그 기회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신이 ‘실격자’임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더 기대고 상처 주는 일을 차라리 미리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의 최후는 더 이상 급격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다. 이미 예견된 결말처럼 조용히 다가온다. 그의 마음속은 완전히 고장 나 있었고, 그 어떤 위로도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는 다시 마약과 술에 의지하고,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무너져 간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 같은 곳에 수용되며 세상과 격리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던 최종적인 휴식인지도 모른다.

 

『인간 실격』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자이는 요조를 통해 인간의 부끄러움과 나약함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그는 인간으로서 실패했고, 그 사실을 스스로 낱낱이 인정한다. 그 처절한 자기 고백이야말로 독자로 하여금 더욱 깊은 연민과 불안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마음속 어딘가에는 요조와 닮은 부끄러움 하나쯤 숨겨 두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불편하고, 가장 직설적이며, 가장 솔직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여기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두운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되, 그럼에도 아무것도 덮어주지 않는다. 결국 이 고백은 구원받지 못한 채로 남아, 독자의 마음 어딘가를 서늘하게 적신다.

 

 

5부 – 우리 안의 실격

 

『인간 실격』의 마지막 장은 이미 끝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독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조용히 계속된다. 요조는 정신병원 같은 곳에 격리되었고, 더 이상 세상과도, 사람들과도 관계 맺지 않는다. 이로써 그의 파멸은 완성된 듯 보인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가 정말 그리고자 했던 것은 요조 개인의 몰락이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실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요조는 무척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이 문장은 어쩌면, 스스로를 향한 가장 처절한 사형선고 같지만 동시에 불가사의한 해방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어떤 기대도 짊어지지 않는다. 모든 가면을 벗어버린 자의 표정은 기묘하게도 편안하다.

 

독자가 이 소설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아픔은 바로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은 요조와 닮아 있다. 모두가 ‘정상적인 인간’처럼 살아가길 원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고, 비겁하며, 부끄럽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웃고, 열심히 성공하려 애쓰지만, 『인간 실격』은 그런 인간의 본질을 무자비하게 들추어낸다.

 

요조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대신 폭로해 준다. 그의 파멸은 철저하게 사적이지만, 그 파편은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까지 날아와 꽂힌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인간의 몰락담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읽힌다. 다자이는 인간의 존엄과 불완전함을 끝까지 밀어붙여 우리로 하여금 묻도록 만든다. “나는 진짜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정말 인간으로서 충분히 살아가고 있는가?”

 

『인간 실격』의 위대함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도 솔직하고 적나라하기에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이 작품은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죄와 속죄, 도덕과 심판 같은 교훈도 없다. 오직 하나, 인간의 나약함과 실패만이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진실되게 다가온다.

 

요조가 끝내 아무것도 구원받지 못하고 홀로 사라졌듯, 우리 역시 언제든 실격할 수 있는 존재임을 다자이는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가 적어도 그 사실을 직면하고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실격』은 그래서 고통스러운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따뜻하다. 우리가 모두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같이 고백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요조의 목소리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심지어 실격이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