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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리뷰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by new-story1 2025.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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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목차

 

1부 – 벽을 넘은 두 청춘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는 첫 장부터 우리를 폐쇄된 정신병원으로 몰고 간다. 이곳은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공간, 모든 규칙과 자유가 강제로 조절되는 세계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물세 살 청년 수명과 승민이 만난다. 이 둘의 만남은 단순한 우정이나 동료애 이상의 무언가를 예고한다. 그것은 곧 서로의 삶을 부딪히게 하고, 심장을 쏘듯 강렬히 흔드는 사건의 시작이다.

 

소설은 수명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수명은 표면적으로 ‘조울증’이라는 병명을 달고 병동에 들어와 있지만, 그의 내면은 매우 이성적이고 건조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모호해한다. 그는 “나를 관리하기 위한 안전장치”처럼 스스로를 병원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승민을 만나며 그의 세계는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승민은 병원에서도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다. 자유롭고, 거칠며, 무엇보다 두렵지 않다. 담장을 넘을 때조차 주저함이 없다. 그의 첫 등장은 마치 폭풍 같아서, 고요한 수명의 삶을 단숨에 휘저어 놓는다. 그리고 수명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그를 따라 나선다. 이들의 탈출은 단순한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수명이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갈망, 즉 ‘살아있음’으로 향하는 본능적인 몸짓이다.

 

정유정은 이 첫 만남과 탈출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그린다. 담장을 기어오를 때의 손바닥 감촉, 숨이 차오르는 폐, 낙엽과 흙냄새, 거친 숨소리까지 독자는 함께 느끼게 된다. 그것은 갑갑했던 병원의 공기를 밀어내고, 독자 또한 한 번에 해방시킨다. 동시에 그 자유가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지 직감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벽’이다. 정신병원의 벽은 단순히 물리적인 경계가 아니다. 그것은 수명이 스스로 쌓아올린 두려움, 남들의 시선, 자기검열의 상징이다. 승민이 그 벽을 가볍게 뛰어넘을 때, 수명은 깨닫는다. 자신은 평생을 벽 안에서만 살았고, 그것을 안전이라고 믿어왔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는 이미 담장을 넘어버렸다. 돌아갈 수 없는 지점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이 단순한 청춘 탈출극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들의 탈출은 곧 ‘심장을 향한 여행’이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기 자신을 향한 혹독한 탐험. 첫 장을 덮을 때, 독자는 묻게 된다. 나는 과연 담장 밖으로 나가본 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자유가 두렵지 않은가?

 

 

2부 – 광기와 자유의 경계에서

 

수명과 승민의 탈출은 단순히 병원을 벗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들의 내면에서 오랫동안 꾹꾹 눌러왔던 무언가를 터뜨리는 기폭제가 된다. 이제 둘은 세상의 눈길과 규칙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 해방감은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수명은 자유로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도망친 것이 무엇인지 자주 묻는다. “이게 진짜 자유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광기일까?”

 

승민은 철저히 현재를 산다. 내일의 불안 따위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 그의 거친 농담과 돌발행동은 종종 수명을 당황하게 만들지만, 그 안에 숨은 순수함이 수명을 자꾸만 사로잡는다. 승민은 규칙이 없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벼랑 끝으로 몸을 던진다. 그 모습은 무모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수명은 오히려 그에게서 이상한 해방감을 본다.

 

정유정은 이 구간에서 두 청춘이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낯선 도시의 허름한 모텔, 싸구려 술과 담배 냄새, 아무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흘러가는 시간들. 그 속에서 수명은 승민의 에너지를 좇아가며 스스로도 점점 통제를 잃어간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다. 마치 그 광기 속에서야말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소설 속 승민은 자유를 대가로 ‘안전’을 포기한다. 수명은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갈등을 느낀다.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시간은 답답했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자신이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승민을 따라 나온 이후부터는 매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와, 동시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공존한다. 이 불안정함이야말로 진짜 자유의 얼굴이라는 것을, 수명은 서서히 깨닫는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정신없이 치솟았다가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한다. 수명은 그 속도감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더 이상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음을 안다. 그들에게 병원의 담장은 이제 과거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이제 이들은 그 어떤 곳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해줄 벽 없이, 온몸으로 살아야 한다.

 

정유정은 독자로 하여금 그 불안정한 심리를 고스란히 체험하게 한다. 광기와 자유는 언제나 종이 한 장 차이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다고 외치지만, 막상 그 자유가 모든 규제와 질서를 잃은 것이라면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수명과 승민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본능적인 자유의 욕망과 공포를 동시에 비춘다.

 

이제 이야기의 속도는 더 가속이 붙는다. 이들의 탈출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진짜 나’로 살기 위한 필연적인 통과의례가 되어간다. 그 길 위에서 그들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다투며, 더 깊이 스스로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3부 –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다

 

탈출 이후 한동안은 그저 도망치는 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둘만의 공간이 길어질수록 수명과 승민은 조금씩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동지였다. 같은 병동에 갇혀있던, 같은 상처를 가진 청춘. 그러나 자유라는 낯선 땅 위에서, 둘은 조금씩 달라진다.

 

수명은 처음부터 승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규칙을 무시하고, 앞뒤 안 가리고 부딪히며, 살아있다는 감각을 몸으로 확인하는 그런 인간.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승민의 광기는 더 이상 단순한 자유로 보이지 않는다. 그건 마치 폭발 직전의 불꽃 같아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공포를 품고 있다.

 

승민은 수명을 끌어당긴다. 함께 도망치고, 함께 웃고, 함께 욕망을 확인한다. 그러나 수명이 조금이라도 멈칫하거나 물러서려 하면, 승민은 그를 더 깊이 끌어당긴다. “겁나냐? 이게 진짜 사는 거다.” 승민의 말은 유혹이자 협박이다. 수명은 자신이 승민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동시에, 어쩌면 자신 역시 이런 위태로움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시기의 둘은 자주 충돌한다. 술자리에서, 허름한 여관방에서, 심지어 거리를 걷다 말고도 소리를 지르며 싸운다. 그러나 그렇게 다투고 나면 다시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그것은 화해가 아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공포에서 나오는, 본능적인 붙잡음이다. 그리고 그 붙잡음이 서로에게 상처로 남는다.

 

정유정은 이 과정을 섬뜩할 만큼 생생하게 묘사한다. 사람은 언제든 상대에게 구원이 될 수도, 파멸이 될 수도 있다. 수명과 승민의 관계는 점점 더 이 모호한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승민은 수명을 일종의 증명으로 삼는다. ‘봐라, 우리가 이렇게 미친 듯이 살아 있는 거다’ 하고. 반면 수명은 승민에게서 한 발짝만 떨어지면 마치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수명은 점점 더 명확하게 깨닫는다. 승민이 보여주는 ‘자유’에는 너무 많은 폭력과 자기 파괴가 섞여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둘은 멈출 수 없다. 이미 서로를 너무 깊게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이제 단순한 우정이나 연대가 아니다. 서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며, 그러면서도 다시 껴안는 기형적인 공존이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지 모르는 불안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 불안은 두 사람의 대화와 시선, 심지어 숨소리에서도 배어 나온다. 정유정은 그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문장에 새겨 넣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명은 문득 자신이 승민과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바로 그 인정이 이 관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너도 결국은 나처럼 될 거야.” 승민의 낮은 목소리는 선언처럼 들린다. 그리고 수명은 그 선언이 두렵고도 매혹적이다. 이 모순과 긴장이, 이 소설의 3부를 가장 불편하고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4부 – 자유의 끝에서

 

두 청춘은 마침내 도시의 경계를 벗어난다. 낯선 바닷가, 시골의 허름한 여관, 누구도 관심 주지 않는 외진 골목들. 수명과 승민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비로소 숨을 쉰다. 하지만 그 숨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지켜보는 이가 없을 때야말로 인간은 가장 솔직하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승민은 더욱 과격해진다. 술과 약에 절어 있는 시간도 늘어난다. “이제 남은 건 우리뿐이잖아.” 그는 수명을 보며 그렇게 웃는다. 수명은 그 웃음이 무섭다. 그 웃음 속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력과, 동시에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을까 두려운 어린아이의 눈동자가 담겨 있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승민이 밝히는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폭력, 그리고 버림받은 기억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수명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고백한다. 부모의 기대와 폭력, 사회가 만들어놓은 정상이란 기준에 맞추느라 망가진 자아. 이 두 사람은 그래서 서로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 이해가 둘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더 깊은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끈질긴 동아줄이 된다.

 

정유정은 이 부분에서 인간의 밑바닥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누구도 쉽게 말해주지 않는 내면의 추악함, 비틀린 욕망, 지독한 고독. 승민과 수명은 자유를 찾아 병원을 뛰쳐나왔지만, 그 자유는 결코 맑거나 해방적인 것이 아니다. 속박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만이 남는다.

 

그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도시는 변함없다. 사람들은 바쁘게 스쳐가고, 네온사인은 언제나처럼 화려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승민과 수명은 낯설다. 더 이상 예전처럼 ‘보통의 사람’으로 위장할 수가 없다. 이탈한 자의 표식이 둘의 얼굴에, 몸짓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강렬한 장면은 둘이 술집에서 마지막으로 크게 다투는 장면이다. 승민은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수명을 노골적으로 비웃고, 도발하고, 상처를 후벼 판다. “너도 결국 날 배신하겠지. 다 그래. 다들 끝에는 자기 살길만 찾거든.” 승민의 이 한마디는 마치 저주 같다. 그리고 수명은 그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시에 그 저주를 증명하기 위해 점점 극단적인 선택을 향해 내달린다.

 

정유정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유’라는 말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자유란 사실 누군가와의 끈을 끊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 끈을 지키기 위해 때론 스스로를 묶는 일이기도 하다. 수명과 승민은 서로에게 자유의 증거이자 속박이다. 둘이 함께 있기에 비로소 규범에서 벗어나 있지만, 또 둘 때문에 서로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마치 폭풍 직전의 정적 같다. 승민의 광기는 한계를 넘어서고, 수명도 점점 더 예민하게 그 진동을 감지한다. 언제 어디서 모든 것이 무너질지 모르는 긴장감. 이제 독자는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결국 파국을 향해 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 파국은 단지 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안고 사는 ‘살아 있는 것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5부 – 총구 앞에 선 청춘

 

결국 모든 것은 파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파국은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정유정은 마지막 장에서 이 두 청춘을 몰아넣는다. 총구 앞에 선 수명과 승민은 이제 도망칠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들은 극단적인 순간에서 비로소 가장 적나라하게 서로를 바라본다.

 

승민은 무너져 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자유를 찾아 탈출했지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갇힌 인간이 되어 있었다. 수명은 그런 승민 앞에서 묻는다. "네가 그렇게 원하는 게 뭐야? 진짜 자유가 뭔데?" 그러자 승민은 피식 웃는다. "몰라. 나도 몰라. 그냥… 끝나길 바랄 뿐이야."

 

이 대답은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가슴을 때린다. 살아 있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들. 죽음이 구원일지 모른다는 절망. 하지만 정유정은 그 끝에서 아주 가느다란 희망의 선을 보여준다. 수명은 마지막 순간에 총을 들어 승민을 향하지 않는다. 그 총구는 결국 자신을 향하고, 세상 전체를 향한다. 죽음을 향한 그 위태로운 시선은 동시에 살아 있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결말을 무겁게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극적으로도 그리지 않는다. 마치 수명이 스스로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그 찰나, 세상의 모든 청춘이 그렇게 위태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음을 비유하는 듯하다.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지만, 살아가는 것은 결국 고통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고통 때문에 우리는 더 간절히 살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명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는 승민의 부재를, 그 모든 광기와 절망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정유정은 이것을 ‘패배’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우리 대신 살아주지 않기에, 고통스러운 삶을 끝까지 껴안고 가는 것. 그게 인간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마지막 문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이상할 만큼 마음 한구석이 후련해진다.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결말, 남은 질문들, 아픈 기억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진짜다. 살아가는 데 명쾌한 답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각자 총구 앞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다. 그러면서도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또 한 발을 내딛는다.

 

이 소설은 청춘의 무모함과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작디작은 연민과 따뜻함을 끝내 놓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수명과 승민의 이야기는 우리 각자가 가슴에 품고 있는 상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정유정은 이 소설을 통해 묻는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네 심장은 지금 누구를 향해 겨누고 있니?" 이 질문은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자각이야말로, 우리에게 오늘 하루를 더 버틸 이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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