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는 대단한 사건을 앞세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이 힘을 가지는 지점은, 너무도 익숙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데 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직장’이라는 공간.
그 안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룰과 기계적인 관계들,
그리고 그 벽 앞에서 하나둘 무너지는 사람들.
작가는 이 현실을 냉정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보다 노력했고, 성실했고, 때론 열정적이었다.
좋은 대학교, 안정적인 회사, 깔끔한 명함, 누가 봐도 괜찮은 삶.
하지만 그 삶 안에는 균열이 있었다.
승진은 더딘데 업무는 무겁고, 일의 가치보다 사람의 감정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조직 문화 속에서
그는 점점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독자들이 “나도 그랬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만두자니 두렵고, 버티자니 소모적인 현실.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야’라는 감정은 분명하지만,
이걸 벗어난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이란 확신도 없다.
그래서 더 무력해진다. 그래서 더 조용히 침잠하게 된다.
작가는 이 복잡한 감정들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나가라’, ‘도전하라’ 같은 손쉬운 위로나 선택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이 어떻게 감정을 움직이고,
결국 어떤 결정으로 이어지는지를 아주 조밀하게 보여준다.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괜찮은 척’을 하고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들도 처음엔 다 괜찮은 척 한다.
웃고, 일하고, 회식하고, 상사의 말에 끄덕인다.
하지만 점점 쌓이는 피로감은 무심한 듯 다가와 마음을 잠식한다.
어떤 날은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어떤 날은 너무 쉽게 눈물이 맺힌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다 무너진 것 같은 기분.
이 소설이 특별한 건, 그런 감정을 ‘개인의 약함’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 공허, 피로는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걸 정확히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은 아주 다양하다.
조직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불안을 숨기고 있는 이,
실패를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하고 싶은 욕망을 품은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윤리를 벗어야 하나 고민하는 이.
그들은 우리 자신이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야기 중반부에서 주인공들은 서로의 균열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 질문은 위험하다. 그건 곧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질문은 희망이다.
그들은 ‘달까지 가자’고, 함께 가자고 말하기 시작한다.
‘함께’라는 단어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은 결국 서로를 바라본다.
적어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함께 모여,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달’은 단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다.
달은 우리가 바라보는 이상이고,
현실을 벗어나려는 꿈이며,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깊은 욕망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달을 정말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자”고 말하는 용기다.
『달까지 가자』 2부에서는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 질문은 우리가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 파트를 읽는 동안, 나는 내 일상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매일 버티듯 출근하고, 하루를 견디고, 잠들고,
다음날을 반복하는 삶. 그게 전부인 줄 알았던 삶.
하지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이대로 괜찮아?”라고 묻는 순간,
그 일상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현실은 분명 녹록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꿈꾼 것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다만 너무 오래 묻어두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꿈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고.
2부는 소설 속 ‘기획안’이 시작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현실의 무게에 지친 이들이
작지만 단단한 꿈을 꺼내드는 장면.
그 순간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무언가 시작되고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감싼다.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고 낡은 상자가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안에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누워 있다.
그리고 그 상자 위로, 소설의 문장이 하나씩 내려앉는다.
“괜찮아. 너도 느꼈잖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그러니까, 우리… 달까지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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